영업본부에서 교육 요청서가 한 장 도착한다. “3분기 재계약 협상 역량 강화, 대상 40명, 8시간, 10월 중 실시.” 교육팀은 다음 날 벤더 세 곳에 견적을 돌리고, 강사 이력과 사례 구성과 단가를 나란히 놓은 비교표에서 한 곳을 고른다. 10월에 과정이 열리고 만족도는 4.4점으로 마감된다. 이듬해 6월, 같은 본부에서 문장까지 거의 같은 요청서가 다시 도착한다.
이 반복을 벤더 선택의 실패로 진단하면 다음에도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사내 교수설계 역량은 교육 담당자 한 사람의 설계 감각이 아니라, 요구 분석부터 개선까지 이어지는 일곱 개 공정을 조직이 스스로 수행하고 그 결과를 판정할 수 있는 상태다. 공정마다 필요한 능력이 다르고, 조직마다 비어 있는 공정도 다르다.
기업교육 전문가의 판단은 분명하다. 외주와 내부를 가르는 기준은 단가나 인력 규모가 아니라 판정 권한이다. 성과 목표를 쓰는 문장과 합격 여부를 가르는 기준을 밖으로 넘기는 순간, 조직은 그 교육이 성공했는지 스스로 말할 수 없게 된다. 제작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담당자를 늘려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과정 하나는 일곱 개의 공정을 지나 만들어진다
교수설계를 한 덩어리로 보면 “설계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모호한 요건만 남는다. 실제로 과정 하나가 만들어지는 동안 성격이 전혀 다른 판단이 순서대로 일어난다. 각 공정이 답하는 질문이 다르므로 필요한 능력도, 그 공정이 끝났다는 증거도 다르다.
| 공정 | 이 공정이 답하는 질문 | 필요한 능력 | 끝났다는 증거 |
|---|---|---|---|
| 요구 분석 | 누가, 언제부터, 어떤 조건에서 못 하는가 | 요청 뒤의 문제를 되묻고 교육이 답이 아닐 가능성을 검토 | 원인 분류와 교육 범위 밖 항목의 목록 |
| 성과 목표 정의 | 끝난 뒤 업무에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 업무 결과를 관찰 가능한 수행 문장으로 변환 | 현업 책임자가 서명한 목표 문장 |
| 과제 설계 | 무엇을 어떤 순서로 연습시킬 것인가 | 난도·변이·인지 부하를 계열화 | 연습 과제 목록과 투입 순서 |
| 평가 설계 | 무엇을 근거로 통과를 판정하는가 | 시점·증거 유형·판정 기준을 사전에 고정 | 합격 기준표와 측정 시점 |
| 콘텐츠 제작 | 앞의 결정을 어떤 매체로 옮기는가 | 저작도구, 영상, 문서, 인터랙션 구현 | 학습자에게 전달 가능한 산출물 |
| 운영 | 대상자가 실제로 그 조건에서 배우는가 | 일정·차수·현업 조율과 이탈 관리 | 참여·완수 기록과 운영 예외 로그 |
| 개선 | 다음 차수에서 무엇을 바꾸는가 | 실패 지점을 설계 결함으로 되돌리는 판독 | 재설계 사유와 변경 이력 |
이 표를 두고 회의를 열면 대부분의 조직에서 같은 장면이 나온다. 다섯째와 여섯째 줄에는 담당자 이름이 붙지만, 첫째와 넷째 줄은 비어 있거나 “벤더”라고 적힌다. 제작과 운영만 내부에 있고 분석과 판정은 밖에 있는 구조다.
요구 분석은 요청서를 받아쓰는 일이 아니라 반려할 수 있는 권한이다
교육 요청서에는 이미 해법이 적혀 있다. “협상 교육 8시간”은 요구가 아니라 처방이다. 요청자는 관찰한 증상을 자신이 아는 해법으로 번역해 보낸다. 그 번역을 그대로 받아 적으면 교육팀은 구매 대행 조직이 된다.
요구 분석 공정은 세 가지를 되묻는 데서 시작한다. 누가 못 하는가, 언제부터 못 했는가, 어떤 조건에서 못 하는가. 전원이 못 하는 것과 최근 입사자만 못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조직개편 이후에 생긴 문제라면 권한 경계가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도구를 쓸 때만 막힌다면 교육이 아니라 인터페이스나 절차를 손대야 한다.
이 되묻기는 요청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요구 분석 역량은 질문 기법이 아니라 권한 문제에 가깝다. 교육 요청을 반려하거나 범위를 축소해 되돌려 보낼 수 있는 조직만 이 공정을 실제로 운영한다. 요구 분석이 수행됐는지는 다음 흔적으로 확인한다.
- 요청서 원문과 다르게 정의된 문제 문장이 남아 있다.
- 교육으로 풀지 않기로 한 항목과 그 사유가 별도로 적혀 있다.
- 대상자가 요청된 전원에서 특정 집단으로 좁혀졌다.
- 요청 시점의 8시간이 다른 형태와 분량으로 바뀌었다.
네 흔적 중 하나도 없다면 그 조직에 요구 분석 공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청서와 결과물이 같은 문장을 쓰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과 목표를 쓰는 문장은 밖으로 넘기면 안 되는 첫 번째 산출물이다
“협상 역량을 강화한다”와 “재계약 협상에서 할인 요구를 받았을 때 가격 외 조건 두 가지를 제시하고 그 근거를 CRM에 기록한다”는 같은 목표가 아니다. 앞 문장은 어떤 과정을 만들어도 달성했다고 주장할 수 있고, 뒤 문장은 관찰과 반증이 가능하다.
목표 문장의 정밀도가 뒤따르는 모든 공정을 결정한다. 관찰 가능한 수행이 정해져야 연습할 과제가 정해지고, 과제가 정해져야 판정 기준이 정해진다. 반대로 목표가 모호하면 과제는 사례 토의로, 판정은 만족도 조사로 흘러간다. 설계가 무너지는 지점은 대개 제작 단계가 아니라 이 첫 문장이다.
목표 문장을 벤더에게 맡기면 두 가지가 함께 넘어간다. 무엇을 성공으로 볼지, 그리고 그 성공을 누가 판정할지다. 제안서에 적힌 “학습 목표”는 그 벤더가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목표를 받아 쓰는 조직은 나중에 성과가 없다고 말할 근거도 함께 잃는다.
이 공정의 역량은 문장력이 아니라 현업과 합의하는 능력이다. 교육팀이 초안을 쓰고 현업 책임자가 “그 수행이 실제로 관찰되는 자리”를 지목해야 문장이 닫힌다. 이 합의가 30분 안에 끝나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요구 분석이 덜 끝났다는 신호다.
과제 설계는 목차를 나누는 일이 아니라 연습 환경의 변이를 정하는 일이다
과제 설계 공정을 콘텐츠 목차 작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학습자가 무엇을 몇 번, 어떤 조건 변화 속에서 연습하는지를 정하는 일이다. 같은 내용을 다루더라도 연습 환경을 어떻게 배열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2026년 1월 공개된 Communications Psychology 연구는 이 문제를 실험으로 보여 준다. 참가자 241명이 여섯 라운드의 학습 과제를 수행했고, 일관된 과제 환경과 비일관 환경, 스트레스 조건과 통제 조건으로 나뉘었다. 일관된 환경은 학습 중 효율을 높였지만, 이후 비일관 환경으로 바뀐 참가자에게서는 수행이 무너졌다. 전환 전후의 변화 양상은 인지적 재평가나 불확실성 감내 같은 개인차와 생리적 반응성에 따라 갈렸고, 집단 평균만 보면 이 차이가 상쇄돼 보이지 않았다.
기업교육으로 옮기면 함의는 구체적이다. 사내 과정의 연습 사례는 대개 정돈돼 있다. 고객 정보가 정리돼 있고 상대의 반응은 예측 가능하며 시간 압박이 없다. 그 환경에서 능숙해진 학습자가 현장에서 무너지는 것은 내용을 잊어서가 아니라, 연습한 환경과 수행 환경의 일관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제 설계 역량은 난도를 높이는 능력이 아니라 변이를 계획하는 능력이다. 초기에는 조건을 고정해 절차를 안정시키고, 이후 정보 결손·상대 반응 변화·시간 제약 같은 변이를 하나씩 들여온다. 어떤 변이를 언제 넣을지 결정하려면 현업의 실제 예외 상황 목록이 있어야 한다. 이 목록 없이 만든 과정은 난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변이가 없어서 전이되지 않는다.
평가 설계는 설문을 배포하는 일이 아니라 측정 시점을 먼저 고정하는 공정이다
평가 설계는 가장 자주 비어 있으면서 비어 있다는 사실이 가장 늦게 드러나는 공정이다. 과정이 끝난 날 만족도 설문을 돌리는 것으로 평가를 닫으면, 무엇을 판정했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Journal of Workplace Learning에 2026년 1월 실린 전이 평가도구 스코핑 리뷰는 이 공정의 크기를 보여 준다. 일곱 개 데이터베이스에서 1,748건을 찾아 중복 제거 후 1,252건, 적격 검토 320건을 거쳐 45편이 포함됐고, 참가자는 모두 24,096명이다. 확인된 도구는 세 갈래로 나뉜다. 개별 개발·검증된 단독 도구 24개, 여러 연구의 문항을 조합한 복합 설문 18개, 특정 과정에 맞춘 맞춤 도구 3개다. 단독 도구 가운데 15개가 LTSI 계열이었고, LTSI 본체는 16개 요인에 걸쳐 89문항으로 구성된다.
문항 수와 구조는 도구마다 크게 다르다. 뇌졸중 전문간호사 대상 척도는 다섯 영역 37문항이고, 전이 예측 요인 설문(FPT)은 네 요인 30문항, 함께 쓰인 효능 설문(CdE)은 단일 요인 7문항이다.

Journal of Workplace Learning 원문 PDF 11쪽 Table 2 후반부. 도구별 문항 수, 설문 형식, 실시 시점, 요인 구성이 나란히 놓인다. 실시 시점 칸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Not reported”가 평가 설계에서 시점이 얼마나 자주 생략되는지 보여 준다.
시점 문제는 리뷰 전체에서도 확인된다. 45편 중 9편이 종료 직후나 2주 이내에, 10편이 3개월 이후에, 4편이 1~3개월 사이에, 3편이 1년에서 2년 사이에 도구를 시행했다. 나머지 19편, 곧 42%는 시행 시점을 밝히지 않았거나 불명확했다.
평가 설계 역량의 핵심은 문항을 잘 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언제 재는지를 과정 시작 전에 확정하고, 그 시점에 실제로 잴 수 있는 증거를 함께 정하는 일이다. 종료 직후에 재면 반응과 기억을, 3개월 뒤에 재면 잔존과 적용을 본다. 둘은 다른 질문이므로 하나로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 없다.
콘텐츠 제작만 키운 조직은 정교하게 잘못된 과정을 만든다
제작 공정은 일곱 공정 중 가장 눈에 잘 보이고 가장 배우기 쉽다. 저작도구 사용법, 영상 편집, 인터랙션 구현은 교육 과정과 자격이 잘 갖춰져 있고 결과물이 즉시 눈에 보인다. 그래서 조직이 역량 강화를 결심하면 대개 여기부터 손댄다.
문제는 제작이 변환 공정이라는 점이다. 앞 공정이 정한 목표와 과제와 판정 기준을 학습자가 접근 가능한 매체로 옮기는 일이다. 앞이 비어 있으면 제작은 옮길 것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고, 이때는 제작 역량이 높을수록 결과가 나빠진다. 근거 없는 목표가 정교한 화면과 매끄러운 내레이션으로 전달되면 아무도 그 목표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상태의 조직에는 특징적인 산출물이 남는다. 잘 만든 콘텐츠, 높은 완료율, 상세한 학습 이력, 그리고 성과와의 연결을 묻는 순간 나오는 침묵이다.
지도 인력 부족 59.5%와 방법을 모른다 9.9% 사이에 진짜 공백이 있다
설계 공정의 결핍은 스스로 진단되지 않는다. 조직은 자기 문제를 인력 부족으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고, 그 번역이 처방을 바꾼다.

일본 후생노동성 능력개발기본조사(令和6年度) 조사결과 개요 PDF 20쪽. 위쪽 도표는 인재육성에 문제가 있다고 답한 사업소 비율의 추이, 아래쪽 도표는 그 문제점의 내역을 보여 준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능력개발기본조사에서 능력개발이나 인재육성에 문제가 있다고 답한 사업소는 79.9%였다. 문제점 내역은 “지도할 인재가 부족하다”가 59.5%로 가장 높았고, “인재를 육성해도 그만둔다” 54.7%, “인재육성을 할 시간이 없다” 47.4%가 뒤를 이었다. 반면 “인재육성 방법을 모른다”는 9.9%, “적절한 교육훈련기관이 없다”는 8.9%에 그쳤다.
이 격차의 해석이 중요하다. 여섯 배 가까운 차이는 방법론 결핍이 실제로 적다는 뜻이 아니라, 방법론 결핍은 자기 진단에 잘 잡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설계 공정이 비어 있는 조직은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관찰할 기준 자체를 갖지 못한다. 반면 가르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세어서 확인되는 결핍이다.
진단이 인력 부족으로 내려지면 처방도 정해진다. 강사를 섭외하거나 과정을 외주로 넘긴다. 단기적으로 작동하고 장기적으로 설계 공정의 공백을 고착시키는 처방이다.
외주와 내부를 가르는 기준은 단가가 아니라 판정 권한이다
외주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전문 촬영이나 다국어 번역, 특수 규제 분야의 콘텐츠를 내부에서 만들 이유는 없다. 문제는 무엇을 넘길지 정하는 기준이 대개 비용과 여력이라는 점이다. 그 기준으로 자르면 손이 많이 가는 공정부터 나가고, 판단이 필요한 공정은 손이 적게 가 보이므로 함께 딸려 나간다.
| 공정 | 외주 적합도 | 넘길 때 잃는 것 | 내부에 남겨야 할 최소 산출물 |
|---|---|---|---|
| 요구 분석 | 낮음 | 요청을 반려할 근거와 조직 맥락 | 문제 정의서와 교육 범위 밖 항목 |
| 성과 목표 정의 | 넘기지 않음 | 성공의 정의와 사후 반증 가능성 | 현업이 서명한 수행 목표 문장 |
| 과제 설계 | 조건부 | 현업 예외 상황의 반영 | 실제 예외 목록과 변이 투입 순서 |
| 평가 설계 | 조건부 | 합격선을 정하는 권한 | 합격 기준표와 측정 시점 |
| 콘텐츠 제작 | 높음 | 제작 일정 통제 정도 | 검수 기준과 수정 요구 이력 |
| 운영 | 높음 | 현업 조율의 즉시성 | 이탈·예외 로그와 대응 기록 |
| 개선 | 낮음 | 실패를 설계로 되돌리는 경로 | 재설계 사유와 변경 이력 |
이 표에서 내부에 반드시 남아야 하는 것은 두 줄이다. 성과 목표 정의와 합격 기준 판정. 이 둘을 넘기면 조직은 자신이 발주한 교육이 성공했는지 외부에 물어봐야 하는 상태가 된다. 벤더가 성실하더라도 구조가 그렇다.
과제 설계와 평가 설계를 조건부로 둔 것은 실무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외부 설계자가 초안을 만들어도 된다. 다만 어떤 예외를 연습에 넣을지, 어느 선을 통과로 볼지는 내부가 정해야 한다. 초안을 받아 그대로 승인하면 그것은 전면 외주다.
현업 전문가와 교수설계자의 경계는 내용이 아니라 판정 대상에서 갈린다
현업 전문가(SME)와 교수설계자를 나누는 기준을 “내용은 SME, 형식은 설계자”로 잡으면 협업이 실패한다. 이 구분에서는 SME가 목차를 쓰고 설계자가 그것을 보기 좋게 만드는 일이 반복된다. 실제 경계는 각자가 무엇을 판정하는지에 있다.
SME가 판정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이 절차가 현재 기준으로 맞는가, 언제 개정됐는가.
- 여기서 틀리면 어떤 손실이나 위험이 발생하는가.
- 현장에서 허용되는 변형과 절대 허용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 실제로 자주 나오는 예외 상황은 어떤 모습인가.
교수설계자가 판정하는 것은 다르다.
- 이 내용을 초보자가 어떤 순서로 연습해야 하는가.
- 어떤 증거를 봐야 할 수 있다고 판정할 수 있는가.
- 학습자가 반복해서 실패하는 지점은 설계의 어느 결정에서 왔는가.
- 이 수행을 관찰하려면 어떤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가.
두 목록은 겹치지 않는다. SME에게 학습 순서를 물으면 자신이 배운 순서나 문서의 목차 순서를 답하고, 설계자에게 내용 정확성을 물으면 검증할 방법이 없다. 협업 실패의 대부분은 서로에게 상대의 판정 항목을 물었기 때문에 생긴다.
이 경계가 정리되면 SME의 투입 시간도 줄어든다. 목차 회의에 세 번 부르는 대신 예외 목록과 합격 기준 검토에 두 번 부르면 된다.
한 사람이 일곱 공정을 겸한다면 버릴 순서가 정해져 있다
교육 담당자가 한두 명인 조직에서 일곱 공정을 모두 내부에서 수행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때 필요한 것은 전부 하려는 계획이 아니라 무엇부터 버릴지에 대한 순서다.
버리는 순서는 제작에서 시작한다. 공급자가 가장 많고 품질 편차를 검수로 통제하기 쉽다. 다음은 운영이다. 일정 관리와 차수 운영은 플랫폼과 위탁으로 상당 부분 대체된다. 그다음이 과제 설계 초안이다. 초안은 밖에서 받아도 되지만 예외 목록은 내부가 준다.
끝까지 남겨야 하는 것은 성과 목표 정의, 합격 기준 판정, 그리고 개선 판독이다. 이 셋은 조직 맥락 없이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고, 없으면 나머지 공정의 결과를 해석할 수 없다.
한 사람이 운영하는 교육 조직의 최소 산출물은 과정당 한 장이면 된다. 문제 정의 한 문단, 수행 목표 문장 세 개 이내, 연습 과제 목록, 합격 기준과 측정 시점, 그리고 지난 차수 대비 변경 사유. 이 한 장이 있으면 나머지를 밖에서 사와도 통제권이 남는다. 없으면 전담 인력을 세 명 두어도 매년 같은 요청서를 받는다.
한국 기업의 교육팀 직무기술서는 아직 제작 도구 목록으로 끝난다
국내 교육 담당자 채용 공고를 나란히 놓으면 요구 역량의 편중이 드러난다. 저작도구 활용, LMS 운영, 영상 편집, 콘텐츠 기획, 강사 섭외, 만족도 분석이 반복된다. 요구 분석 설계, 수행 목표 작성, 합격 기준 설정, 전이 측정 설계를 명시한 공고는 드물다. 직무기술서가 제작과 운영 공정만 기술하고 있으면 그 조직에서 자라는 역량도 두 공정에 머문다.
이 편중은 평가 지표와 맞물려 있다. 교육팀 성과를 연간 과정 수, 총 교육시간, 수료율, 만족도로 측정하면 모든 지표가 제작과 운영에서 나온다. 요구 분석을 잘해서 교육을 열지 않기로 한 결정은 이 지표 체계에서 성과가 아니라 실적 감소로 기록된다.
벤더 관리 담당자의 역량 요건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필요한 것은 단가 협상력이 아니라 설계 산출물 검수 능력이다. 제안서의 학습 목표가 관찰 가능한 수행으로 쓰였는지, 평가 계획에 시점이 명시됐는지, 연습 과제에 현업 예외가 들어 있는지를 읽어 내지 못하면 검수는 일정과 단가 확인에서 끝난다.
우선 손댈 곳은 조직 개편이 아니라 문서 세 종이다. 교육 요청 접수 양식에 문제 정의 칸을 넣고, 직무기술서에 분석과 평가 공정을 추가하고, 벤더 검수 체크리스트를 설계 산출물 기준으로 다시 쓴다. 이 셋은 인력 증원 없이 시작할 수 있다.
사내 교수설계 역량이 자리 잡았는지는 여섯 개의 기록으로 확인한다
역량이 생겼는지는 담당자 수나 자격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공정이 실제로 돌았다면 남는 기록이 따로 있다.
- 반려·축소된 교육 요청 건수와 그 사유. 0건이면 요구 분석 공정은 작동하지 않는다.
- 성과 목표 문장을 누가 처음 썼는가. 벤더 제안서에서 온 목표의 비율을 센다.
- 합격 기준의 출처와 승인자. 기준이 강사 재량이면 판정 권한은 이미 밖에 있다.
- 측정 시점이 과정 시작 전에 확정된 과정의 비율. 종료일 설문만 있는 과정은 시점이 없는 것이다.
- 재설계 사유 기록의 구체성. “반응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느 과제의 어떤 실패에서 왔는지 적혀 있는가.
- 외주 산출물의 검수 반려율과 반려 사유 분포. 반려가 없다면 검수가 없는 것이다.
여섯 기록 중 앞의 세 개가 비어 있는 조직은 제작 역량을 아무리 키워도 매년 같은 요청서를 받는다. 반대로 이 셋만 살아 있으면 제작과 운영을 전부 밖에 맡겨도 과정의 방향은 조직이 쥔다.
외주 없이 과정을 만들 수 있는 조직이라는 말은 모든 공정을 내부에서 수행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느 공정을 누가 수행하든 그 결과가 맞는지 조직이 스스로 판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판정 능력이 사내 교수설계 역량의 실체이고, 그것 없이 늘린 제작 인력은 더 정교한 과정을 더 빨리 만들어 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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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rdondi et al., Workplace training transfer: a systematic scoping review of evaluation tools for adult learning, Journal of Workplace Learning 38(1), 2026: https://www.emerald.com/jwl/article/38/1/1/1302036/Workplace-training-transfer-a-systematic-scoping
- 厚生労働省, 令和6年度「能力開発基本調査」, 2025: https://www.mhlw.go.jp/stf/houdou/newpage_00202.html
- LaFollette et al., Task, person, and experiential characteristics drive the transfer of learning, Communications Psychology 4, 2026: https://www.nature.com/articles/s44271-026-004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