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보고서 초안 회의에서 HRD 담당자가 처음 받는 질문은 교육 성과가 아니다. 지난해 1인당 평균 교육 시간이 몇 시간인지, 그 숫자를 어떤 식으로 계산했는지, 분모에 누가 들어갔는지, 같은 방식으로 재작년 숫자를 다시 뽑아낼 수 있는지다. LMS 대시보드에는 21.4시간이 찍혀 있지만 재무팀은 그 숫자를 그대로 쓰지 못한다. 계약직과 파견 인력이 분모에 들어갔는지, 중도에 그만둔 과정의 학습 시간이 분자에 포함됐는지 문서로 답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적자본 공시는 기업이 인력과 인재 투자에 관한 정보를 정해진 항목과 정의, 산식에 따라 외부 자본시장에 보고하는 제도다. 어려운 부분은 항목 수가 아니라 정의의 구속력이다. 내부 보고서라면 올해 계산 방식을 바꾸고 각주 한 줄로 넘어가면 되지만, 공시는 같은 정의로 여러 해를 이어 붙여야 하고 제3자가 그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볼 수 있어야 한다.
기업교육 전문가로서 내리는 결론은 분명하다. 인적자본 공시가 HRD에 요구하는 것은 보고서 한 페이지가 아니라 교육 데이터의 정의와 증적, 연도 간 일관성을 관리하는 운영 체계다. 공시 항목을 IR 부서의 숙제로 넘기면 첫해는 넘어간다. 문제는 두 번째 해다. 정의를 손보는 순간 과거 숫자까지 되돌려 써야 하고, 그 부담은 전부 HRD로 돌아온다.
공시 항목은 IR 문서보다 HRD의 데이터 정의서를 먼저 바꾼다
공시 프로젝트는 대개 재무와 IR에서 시작한다. HRD는 숫자를 제출하는 부서로 참여한다. 그런데 요청받는 숫자가 LMS 조회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보통 마감 2주 전에 드러난다.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기준의 자사 인력 영역인 ESRS S1은 교육 항목을 별도 공시 요구사항으로 둔다. 공시 요구사항 S1-13은 교육과 역량 개발이 직원에게 어느 정도 제공되는지 공시하라고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두 가지를 지정한다. 정기 성과·경력 개발 리뷰에 참여한 직원 비율을 성별로 나눈 값, 그리고 직원 1인당 평균 교육 시간을 성별로 나눈 값이다.
항목만 보면 두 줄이다. 그런데 이 두 줄을 만들려면 HRD의 데이터 모델이 바뀐다. 같은 기준은 직급이나 직무 같은 직원 범주별 세분과, 자사 인력에 포함된 비직원 대상 수치를 선택 항목으로 둔다. 선택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결정을 강요한다. 넣지 않기로 했다면 왜 넣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설명은 교육 운영의 실제 경계와 맞아야 한다.
공시 항목을 받아 든 HRD가 최소한 문서로 확정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 교육 시간으로 인정하는 활동의 목록과 인정하지 않는 활동의 목록.
- 분모에 들어가는 인원의 정의와 기준일, 그 숫자의 출처 시스템.
- 국내외 법인, 고용 형태별로 집계 범위에 포함하는 단위와 제외하는 단위.
- 계산 결과를 되짚어 갈 수 있는 원시 기록의 보관 위치와 보존 기간.
이 네 가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평균값을 먼저 내면, 다음 해에 같은 값을 다시 만들어내지 못한다.
교육 시간 한 줄에 최소 다섯 개의 정의 결정이 숨어 있다
1인당 평균 교육 시간은 인적자본 지표 중 가장 단순해 보이는 축에 든다. 실제로는 이 한 줄을 확정하기까지 다섯 갈래의 판단이 필요하다.
| 결정해야 할 것 | 내부 보고에서 흔한 관행 | 공시가 요구하는 수준 | 미결정 시 생기는 문제 |
|---|---|---|---|
| 분자에 넣을 활동 | 집합교육과 이러닝 이수 시간 | 인정 활동 목록과 제외 기준을 문서로 고정 | 부서마다 다른 범위로 합산돼 총량이 부풀거나 줄어듦 |
| 시간을 세는 방법 | 과정 표준 시간 또는 접속 시간 | 표준 시간과 실측 시간 중 하나를 선택하고 연도 간 유지 | 콘텐츠 유형이 바뀔 때 추세가 끊김 |
| 분모의 인원 | 기말 재직자 헤드카운트 | 다른 공시 항목에 보고한 인원 수치와 동일 출처 | 비율의 분자와 분모가 서로 다른 모집단을 가리킴 |
| 대상 범위 | 정규직 중심, 해외 법인은 제외 | 자사 인력의 정의에 따른 포함·제외를 명시 | 파견·계약 인력을 뺀 채 전사 평균이라고 서술 |
| 기간 귀속 | 교육 운영 연도 | 재무 보고 기간과 일치 | 4분기 교육이 어느 해로 잡히는지 매년 달라짐 |
다섯 가지 중 가장 자주 뒤늦게 터지는 것은 분모다. 국내 사업장 정규직만 놓고 계산한 21.4시간과, 계약직과 해외 생산법인을 모두 포함해 계산한 숫자는 절반 가까이 차이 나기도 한다. 두 숫자 모두 거짓은 아니다. 다만 어느 쪽을 공시했는지 밝히지 않으면 다음 해 담당자가 반대쪽을 고르는 순간 추세가 조작처럼 보인다.
시간을 세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과정 표준 시간을 쓰면 콘텐츠 개편 때마다 과거 값이 흔들리고, 접속 시간을 쓰면 자동 재생과 창을 켜 둔 시간이 섞인다. 어느 쪽을 골라도 무방하지만 고른 뒤에는 규칙을 바꾸지 않아야 하고, 바꿔야 한다면 바뀐 사실과 영향 범위를 함께 적어야 한다.
ESRS S1-13은 분자와 분모를 서로 다른 공시 항목에서 가져오게 만든다
정의 문제를 추상적인 걱정으로 여기기 쉽지만, 기준 원문은 산식을 직접 지정한다. ESRS S1의 적용 지침 AR 78은 평균 교육 시간을 이렇게 계산하라고 적는다. 성별 범주별로 직원에게 제공되고 직원이 완료한 총 교육 시간을, 같은 성별 범주의 총 직원 수로 나눈다. 그리고 이때 쓰는 인원 수치는 별도 공시 요구사항인 S1-6에서 보고한 헤드카운트여야 한다.
실무에서 이 한 문장의 무게는 크다. 분자는 LMS에서 나오고 분모는 인사 시스템에서 나온다. 두 시스템의 기준일이나 재직 판정 규칙이 다르면 비율 자체가 흔들린다. 분자 조건도 제공에 그치지 않고 완료까지 요구하므로, 배정만 하고 이수하지 않은 시간은 셀 수 없다. 배정 시간을 실적으로 집계해 온 조직이라면 로직을 다시 짜야 한다.
리뷰 지표도 정의가 촘촘하다. 적용 지침 AR 77은 정기 성과 리뷰를 직원과 상급자가 모두 아는 기준에 따라, 직원이 인지한 상태에서 연 1회 이상 수행하는 리뷰로 규정한다. 평가 시스템에 결과 코드가 남아 있다는 사실과, 직원이 인지한 상태에서 기준에 따라 리뷰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다르다. 후자를 증명하려면 면담 일자와 사용한 기준 문서가 남아 있어야 한다.

ESRS S1 원문 31쪽. AR 77은 리뷰 비율의 분모를 S1-6의 직원 헤드카운트로 못 박고, AR 78은 평균 교육 시간의 분자를 제공되고 완료된 시간으로 한정한다. AR 79는 직원 범주를 직급이나 직무 기준으로 회사가 정의하되 자사 인사 시스템에서 도출하라고 적는다.
세 번째 지침인 AR 79도 흘려보낼 수 없다. 직원 범주를 고위 관리자와 중간 관리자 같은 직급 기준이나 기술직, 관리직, 생산직 같은 직무 기준으로 나누되 자사 인사 시스템에서 도출하라고 요구한다. 교육 데이터의 조직 코드와 인사 데이터의 직군 코드가 다르게 관리되는 회사라면, 범주별 수치를 내는 순간 두 체계의 불일치가 그대로 드러난다.
기준마다 같은 이름의 지표를 다른 칸에 요구한다
인적자본 공시를 준비하는 조직이 자주 빠지는 함정은 하나의 기준만 보고 항목을 설계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여러 기준이 겹쳐 들어오고, 이름이 같은 지표라도 요구 여부와 세부 조건이 다르다.

일본 내각관방 비재무정보 가시화 연구회의 인적자본 가시화 지침 20쪽. 연수 시간은 ISO, WEF, GRI와 유럽 기준 초안에 공통으로 들어가지만 SASB에는 없다. 연수 참가율과 복수 분야 수강률, 리더십 육성은 ISO에만 표시돼 있다. 표 하단 각주는 유럽 기준 칸이 2022년 4월 공개 협의 초안을 근거로 작성돼 확정 전 변경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다.
이 비교표에서 읽어야 할 것은 동그라미의 개수가 아니다. 첫째, 연수 시간처럼 여러 기준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지표가 비교 가능성의 축이 된다는 점이다. 둘째, 정기 리뷰 참여 비율은 GRI와 유럽 기준에만 나타나므로 어느 기준을 따르느냐에 따라 수집 대상 자체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셋째, 그 표의 유럽 기준 칸조차 확정본이 아닌 협의 초안을 근거로 삼았다고 각주에 적혀 있다는 점이다.
같은 지침의 일본 제도 공시 칸은 항목 나열과 성격이 다르다. 인재 육성 방침과 사내 환경 정비 방침을 두고, 그 방침과 정합적이며 측정 가능한 지표를 목표 및 진척 상황과 함께 공시하라는 형태다. 항목 대조표를 채우는 작업과 자사 방침에 지표를 붙이는 작업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전자는 데이터 수집 프로젝트지만 후자는 인재 전략을 문장으로 확정하는 일이다.
내부 보고용 숫자와 공시용 숫자는 같은 LMS에서 나와도 다른 산출물이다
경영진 보고용 교육 대시보드를 이미 운영하는 조직이라면 공시 대응이 수월할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두 숫자의 성격이 다르다.
| 비교축 | 내부 보고용 데이터 | 공시용 데이터 |
|---|---|---|
| 목적 | 다음 분기 의사결정 | 여러 해에 걸친 외부 비교 |
| 정의 변경 | 필요하면 그 자리에서 바꿈 | 변경 시 사유와 과거 수치 영향까지 기재 |
| 대상 범위 | 보고받는 임원의 관심 조직 | 기준이 정한 인력 범위 |
| 근거 자료 | 집계 결과 화면으로 충분 | 개별 기록까지 되짚어 갈 수 있어야 함 |
| 승인 | HRD 내부 확인 | 재무 책임자와 외부 검증 절차 |
| 오류 처리 | 다음 보고에서 조용히 수정 | 정정 사실 자체가 공시 대상 |
두 산출물의 목적이 다르므로 숫자가 달라도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같은 이름으로 두 숫자가 돌아다니는 상황이다. 경영회의에서는 핵심 인재 대상 26시간을 말하고 공시에는 전 직원 기준 12시간을 적었다면, 각각 무엇을 세었는지 남아 있지 않을 때 신뢰가 무너진다.
해법은 대시보드를 공시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원시 기록을 충분히 잘게 남겨 두고, 내부용과 공시용 집계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분리해 두 산출물을 같은 원천에서 각각 만들어 내는 편이 안전하다.
감사 가능성은 집계표가 아니라 한 건의 수강 기록에서 갈린다
외부 검증을 받는 순간 질문의 성격이 바뀐다. 검증자는 평균값이 맞는지 묻지 않는다. 표본을 뽑아 개별 직원 한 명까지 내려간 뒤 그 사람의 교육 시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되짚는다. 그 과정에서 걸리는 지점은 대개 정해져 있다.
- 과정 표준 시간이 중간에 바뀌었는데 과거 이수 건에 현재 값이 소급 적용되는 경우.
- 잘못 입력한 이수 기록을 삭제해 버려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복원할 수 없는 경우.
- 외부 교육이나 사외 세미나를 수기로 올렸는데 시간의 근거 문서가 연결돼 있지 않은 경우.
- 관리자가 예외 처리로 이수 판정을 바꿨는데 사유와 승인자가 남아 있지 않은 경우.
- 조직 개편으로 소속이 바뀐 직원의 교육 시간이 어느 조직에 귀속되는지 규칙이 없는 경우.
이 목록은 LMS 설계 요건으로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다. 과정 정보에 유효 기간을 두고 당시 값을 함께 저장한다. 기록은 삭제 대신 무효 처리로 남긴다. 수동 보정에는 사유 코드와 승인자를 필수로 건다. 외부 교육 등록에는 증빙 파일을 필수 항목으로 둔다. 조직 귀속은 이수 시점의 소속을 기준으로 고정한다.
이 요건들은 교육 담당자가 원해서 넣는 기능이 아니라, 공시 대응을 시작한 시점부터 시스템이 갖춰야 할 최소 사양에 가깝다. 규제 산업의 증적이 개인의 업무 수행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면, 공시의 증적은 집계된 숫자가 재현 가능함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정의를 한 번 공시하면 되돌리는 비용이 과거 수치까지 번진다
정의를 신중하게 고르라는 조언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있다. 기준 자체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이 2025년 11월 자로 공개한 ESRS S1 개정 초안은 아직 승인 전 문서지만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 교육 항목의 번호가 S1-13에서 S1-12로 옮겨졌다.
- 리뷰의 수식어가 정기에서 공식화된으로 바뀌었다.
- 리뷰 비율과 평균 교육 시간에서 성별 구분 요구가 빠졌다.
- 분모로 참조하는 공시 요구사항이 S1-6에서 S1-5로 바뀌었다.
- 참여 비율에는 백분율 산식이 명시적으로 붙었다.
여기서 얻을 교훈은 개정을 예측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준이 요구하는 것보다 원천 데이터를 더 잘게 쪼개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별 구분 요구가 사라진다고 해서 성별 태그를 붙이지 않기로 하면, 다음 개정이나 다른 기준에서 다시 요구할 때 과거 데이터를 복원할 수 없다. 반대로 원천을 잘게 남겨 두면 어떤 기준이 오더라도 집계 방식만 바꾸면 된다.
정의 변경이 실제로 부르는 비용은 재작성이다. 산식을 바꾸면 이미 공시한 연도의 수치를 새 기준으로 다시 계산해 비교표를 만들어야 한다. 3년치를 되돌리려면 3년치 원시 기록이 그 상태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고, 그 사이 LMS를 교체했다면 이전 시스템의 데이터를 어떤 형태로 이관했는지가 곧바로 문제가 된다.
측정되는 항목만 남기는 왜곡은 공시 첫해부터 시작된다
공시 지표는 조용히 운영을 끌어당긴다. 평균 교육 시간이 외부에 나가는 숫자가 되면 시간이 긴 과정이 유리해진다. 30분짜리 밀도 높은 마이크로러닝보다 4시간짜리 개론 과정이 지표에 기여하고, 이수 기준을 느슨하게 잡을수록 완료 건수가 늘어난다.
리뷰 참여 비율도 같은 압력을 받는다. 비율을 맞추려고 형식적인 면담 기록을 채우면 숫자는 100%에 가까워지지만 실제 경력 대화는 줄어든다. 공시 지표가 성과 목표로 내려간 조직일수록 이 흐름이 빠르다.
왜곡을 줄이는 방법은 지표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짝을 지어 두는 것이다.
- 평균 교육 시간 옆에 학습 후 현업 적용 확인 비율처럼 시간이 늘어도 자동으로 좋아지지 않는 지표를 둔다.
- 리뷰 참여 비율 옆에 리뷰 이후 실제로 합의된 개발 계획의 이행률을 둔다.
- 공시 지표를 개인이나 부서의 평가 항목으로 내려보내지 않고 전사 관리 지표로만 유지한다.
- 지표가 크게 개선된 조직은 칭찬하기 전에 무엇이 바뀌었는지 먼저 확인한다.
공시를 계기로 실제로 좋아지는 것은 정의 통일과 대상 누락 발견이다
부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적자본 공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HRD가 실제로 얻는 것이 셋 있다.
첫 번째는 정의 통일이다. 사업부마다 다르게 세던 교육 시간이 하나의 정의로 모인다. 이 작업은 공시라는 외부 압력이 없으면 몇 년을 미루게 되는 종류의 일이다. 재무 부서가 마감 일정을 들고 오는 덕분에 몇 달 안에 끝난다.
두 번째가 가장 값지다. 분모를 전 직원으로 놓는 순간 평균이 떨어지고, 왜 떨어졌는지 설명하려면 누가 교육을 받지 못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대 근무 현장직, 소규모 해외 법인, 계약 형태가 다른 인력이 교육 데이터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평균을 높이는 가장 정직한 방법은 이들에게 실제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투자 배분의 근거다. 직군별, 법인별 수치가 같은 정의로 정렬되면 어디에 얼마를 쓰는지 처음으로 비교된다. 그 비교는 예산 협상의 언어를 바꾼다. 교육 예산을 지켜 달라는 요청 대신, 특정 직군의 시간이 3년째 하락 중이며 그 직군의 이직률과 겹친다는 서술이 가능해진다.
한국 기업은 공시 의무가 오기 전에 정의를 고정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대응 시점을 국내 제도 일정에만 맞추면 늦는다. 유럽에 자회사를 두거나 유럽 기업의 공급망에 속한 국내 기업은 국내 의무화 이전에 데이터 요청을 받는다. 요청의 주체는 규제 기관이 아니라 거래처의 지속가능성 담당자이고, 요청 양식은 이미 유럽 기준의 항목 구조를 따른다.
한국 기업 특유의 조건도 있다. 계열사와 사업부마다 LMS가 다르고, 파견과 도급 비중이 높은 제조 현장이 있으며, 해외 생산법인의 교육 기록이 본사 시스템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세 가지 모두 데이터 통합이 아니라 경계 정의의 문제다. 시스템을 하나로 합치기 전에 어디까지를 세고 어디부터는 세지 않는지 먼저 문장으로 적어야 한다.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다. 교육 데이터 정의서를 한 장으로 만들어 재무 부서와 함께 서명한다. 작년 수치를 그 정의서대로 다시 계산해 원래 발표한 숫자와 얼마나 벌어지는지 확인한다. 벌어진 이유를 항목별로 적어 다음 해 비교표의 각주 초안으로 남긴다. 외부 컨설팅 없이 실무자 몇 명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다.
경계할 것은 하나다. 평균을 높이려고 대상 범위를 좁히는 선택이다. 정규직만 세면 숫자는 좋아지지만, 다음 개정이나 거래처의 추가 질문에서 곧바로 문제가 된다. 낮은 숫자를 정확한 정의와 함께 내는 편이, 높은 숫자를 설명할 수 없는 상태로 내는 편보다 언제나 안전하다.
HRD가 재무·IR과 먼저 합의해야 할 여섯 가지
공시 대응의 실패는 대개 기술이 아니라 합의 부재에서 나온다. 다음 여섯 항목은 첫 회의에서 결론을 내고 한 장짜리 문서로 남겨야 한다.
- 분모의 인원 정의와 기준일, 그 숫자를 어느 시스템의 어느 화면에서 가져오는지.
- 분자로 인정하는 교육 활동의 목록과, OJT나 자기주도 학습처럼 경계에 있는 활동의 처리 방침.
- 집계에 포함하는 법인과 고용 형태, 제외하는 단위와 제외 사유.
- 원시 기록의 보존 기간과 보관 위치, 시스템 교체 시 이관 책임 부서.
- 오류를 발견했을 때의 정정 절차와, 과거 수치를 다시 쓰는 기준.
- 공시 문구에 담을 한계 표현, 예컨대 어느 범위가 빠졌고 왜 빠졌는지를 적는 문장.
여섯 항목 중 마지막이 가장 자주 생략되고 가장 크게 되돌아온다. 데이터의 한계를 먼저 적어 둔 기업은 이듬해 범위를 넓혀도 추세가 끊기지 않는다. 한계를 적지 않은 기업은 범위를 넓히는 순간 숫자가 나빠지고, 그 하락을 설명할 근거가 없다.
공시 가능한 교육 데이터는 결국 운영이 정직해졌다는 뜻이다
국제 지속가능성 기준을 만드는 쪽에서도 인적자본은 아직 정리 중인 주제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의 인적자본 프로젝트는 2024년부터 2026년까지의 작업 계획 안에서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고, 2025년 12월 논의에서도 기준 제정의 필요성과 실행 가능성을 검토했을 뿐 방향을 확정하지 않았다. 연구 범위에는 인력 규모와 구성, 보상, 몰입, 이직과 함께 교육 및 개발이 포함돼 있다.
기준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미루라는 신호가 아니다. 항목이 굳기 전에 원천 데이터를 정리해 둔 조직은 무엇이 확정되더라도 집계만 바꾸면 된다. 뒤늦게 움직이는 조직은 몇 년치를 소급해 만들어야 하고, 소급한 숫자는 검증을 통과하기 어렵다.
결국 인적자본 공시가 HRD에 남기는 것은 새로운 지표가 아니라 새로운 규율이다. 무엇을 교육으로 인정하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세는지, 그 판단을 누가 언제 승인했는지가 문서로 남는다. 이 규율이 자리 잡으면 교육 데이터는 처음으로 사업 데이터와 같은 무게로 다뤄진다. 그전까지 교육 시간은 잘해야 참고 수치였다. 공시는 그 숫자에 책임을 붙이고, 책임이 붙은 숫자만이 예산과 전략 논의에서 근거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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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uropean Commission, ESRS S1 Own Workforce (Annex I, Commission Delegated Regulation (EU) 2023/2772), 2023: https://eur-lex.europa.eu/eli/reg_del/2023/2772/oj
- EFRAG, ESRS S1 Own Workforce — V1 Unapproved Draft, 2025: https://www.efrag.org/sites/default/files/media/document/2026-02/06.01_unapproved_esrs_s1_v1_-_clean.pdf
- 内閣官房 非財務情報可視化研究会, 人的資本可視化指針, 2022: https://www.cas.go.jp/jp/houdou/pdf/20220830shiryou1.pdf
- IFRS Foundation, Human Capital — ISSB work plan project, 2026: https://www.ifrs.org/projects/work-plan/human-capi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