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HRD는 ‘교육 제공자’가 아니라‘학습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본격적인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의 교육 과정을 기획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강의안을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AI를 활용하면 강의 자료 초안은 몇 분 안에 만들어지고, 퀄리티 높은 영상도 빠르게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분명 긍정적입니다. 콘텐츠 제작의 진입 장벽이 낮아졌고, 교육팀의 리소스 부담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조금 다른 고민이 생기고 있습니다.

콘텐츠는 이렇게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학습은 과연 더 잘 일어나고 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다소 복합적입니다. 학습 자료는 넘쳐나지만, 구성원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을 듣는 시간은 줄었지만, 배운 것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학습은 더 어려워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HRD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콘텐츠 희소성의 붕괴

AI 도입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콘텐츠 희소성’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었습니다. 외부 강사를 섭외하고, 전문 콘텐츠를 구매하고, 내부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어느 주제든지, 일정 수준 이상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더 이상 콘텐츠 자체는 차별화 요소가 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HRD의 역할은 어디에서 경쟁력을 가져와야 할까요?

문제는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현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좋은 콘텐츠를 도입했는데도 반응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 경우입니다. 만족도는 나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히고 실제 업무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종종 콘텐츠를 바꾸려고 합니다. 더 유명한 강사를 찾거나, 더 트렌디한 주제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학습이 설계되는 방식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학습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한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해하고, 반복하고, 실제로 써보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많은 교육이 ‘전달’에서 멈춰 있습니다. 듣고 끝나는 구조, 보고 끝나는 구조가 여전히 많습니다. AI는 이 ‘전달’의 효율을 극단적으로 높여줍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전달 이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학습을 지속하는 ‘설계’

학습이 실제로 일어나는 과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흐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용을 이해하고, 그다음에는 짧게라도 반복해보고, 가능하면 실제 업무에 한 번 적용해보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 세 단계 중 하나라도 빠지면 학습은 쉽게 사라집니다. 특히 ‘적용’ 단계가 빠지면 학습은 기억으로도 오래 남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적용을 개인의 의지에만 맡겨두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좋은 내용이었으니 알아서 써보겠지”라는 기대는 대부분 현실이 되지 않습니다. 업무는 바쁘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부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습은 설계가 필요합니다. 어떤 순서로,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것인지 미리 고민되어야 합니다.

HRD 역할의 이동, 큐레이션과 연결

이제 HRD는 단순히 교육을 제공하는 역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필요한 콘텐츠를 선별하고, 조직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고, 학습 이후의 행동까지 이어지도록 흐름을 설계하는 일.

이 과정은 단순한 운영이 아니라 설계에 가깝습니다. 특히 AI 환경에서는 이 역할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콘텐츠는 이미 넘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덜어내고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어떤 내용을 언제 노출할지, 어디에서 한 번 더 상기시킬지, 어떤 방식으로 현업과 연결할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지금 HRD의 핵심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습의 본질, 경험으로서의 설계

몇 년 전부터 교육 트렌드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가 ‘학습 경험’입니다. 이 표현이 중요한 이유는, 학습을 단일 이벤트가 아니라 흐름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전후의 맥락과 이후의 행동까지 포함해서 설계하는 접근입니다. 짧은 콘텐츠를 보더라도, 그 다음에 무엇을 하게 할 것인지가 함께 설계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간단한 개념을 학습한 뒤, 바로 팀 회의에서 한 번 적용해보게 하거나, 짧은 피드백을 남기게 하는 것만으로도 학습의 밀도는 크게 달라집니다.

이처럼 작은 연결이 반복되면서 학습은 비로소 축적됩니다.

터치클래스: 설계 중심의 학습

이런 변화 속에서 터치클래스가 집중하고 있는 지점도 명확합니다. 콘텐츠를 더 많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이 실제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구조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짧은 단위의 학습을 만들되, 그것이 흩어지지 않도록 연결하고, 현업에서 한 번은 써볼 수 있는 장치를 함께 설계하는 것.

학습이 ‘소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되도록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AI를 활용하면 콘텐츠는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습이 조직 안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은 여전히 설계의 영역에 있습니다.

HRD의 재정의, 교육 제공자에서 학습 설계자로

AI 시대의 HRD는 더 이상 콘텐츠를 만드는 팀으로만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학습이 일어나는 구조를 설계하는 역할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떻게 배우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조직의 교육은 여전히 ‘제공’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설계’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HRD의 다음 단계가 시작될 것입니다.